2017. 10. 25. 09:03ㆍ안산신문
천민 자본주의
박현석<편집국장>
현대 사회사상가 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독일의 사회, 역사, 정치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제안한 천민 자본주의는 1905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나오는 개념이다. 막스 베버는 유대인들의 독특한 종교적, 문화적 관습 탓에 후기 고대부터 중세 유럽에서 사회적 천민 취급을 받으며 금융업이나 고리대금업에 종사했다.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연원은 공공에 대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개신교 적 윤리관에 기초한다는 인식 아래 유대인의 경제 활동을 ‘천민 자본주의’로 명명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각종 사회경제적 병리 현상을 초래하는 왜곡된 자본주의 체제를 일컫는 데 쓰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 사회의 갑질 횡포를 수시로 경계하는 발언도 이같은 천민 자본주의 만연을 경계하는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갑과 을의 관계는 무조건 일방적인 것은 아니지만 갑의 프리미엄도 어느 정도는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갑의 횡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내면세계가 유교윤리에 기반을 둔 선조들은 관리들의 갑질을 무척 경계했다. 도학에 힘쓰고 유교이념 보급에 앞장선 주세붕(1495~1554)선생은 ‘무릉잡고, 송정흥덕지임서’에서 ‘현감이 비록 낮은 직책이지만, 한 고을의 주인이기에 고을 내의 초목, 금수의 생명 등 모두 현감에게 달려있으니 하나의 사물이라도 제대로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면 모두 현감의 책임이다. 하물며 백성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라고 했다.
이 글의 의미는 주세붕이 흥덕이라는 지방의 수령으로 부임하는 벗에게 준 갑질경계의 송서 내용이다. 고을 수령은 조정의 중요 직책에 비하면 하찮은 벼슬일 수 있으나 실상 그 관내에서는 거의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다. 공직자로 법령을 가지고 손쉽게 고을 백성을 통제할 수 있는데다 온갖 핑계로 고혈을 쥐어짜도 마땅히 견제하기도 어려웠기에 자신도 모르게 갑질이 가능한 자리였다.
특히 가치규범의 급변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민족의 혼과 역사, 그리고 전통이 짓밟히거나 소멸 또는 왜곡됐으며 우리 스스로도 나라 패망의 요인을 조선의 봉건제도 탓으로 돌리며 역사와 전통을 부정했다. 안팎으로 자신을 부정하거나 부정당하며 살아왔기에 오로지 살 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밟고서라도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거나 출세하는 것이 목표였다.
겉과 속이 다른 한국사회의 이중성은 겉으로는 미국식의 명분을 내세우나 속으로는 그 반대이다. 미국은 절차와 수단에서 엄격한 법치를 준수하고 사회적 관계가 연고가 아닌 합리적인 실력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기회균등이 공정하게 보장되는 사회다. 즉 겉과 속이 같아 함께 공존하는 사회다.
반면 이중성을 띤 우리의 의식구조는 도입된 자본주의를 윤리와 도덕 같은 정신적 가치는 소홀히 하고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로 정착돼 불리한 상대에게 죄의식 없이 갑질로 나타나는 것이다. 갑질은 상위의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나 상대의 인권을 유린하는 반민주적인 행태로 범죄행위다.
중국 동진의 도연명(365~427)이 자신의 종을 아들이 있는 집으로 보내면서 당부한 말은 유명하다. ‘이 자도 남의 소중한 자식이니, 함부로 대하지 말고 잘 대해주거라.’ 철저한 신분사회에서 종에게까지 이런 배려를 할 수 있는 진정한 인격자의 한 면을 보는 사례다. 천박한 물질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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