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신문]와이드-김태한<삼위정밀 대표>

2019. 3. 6. 10:54안산신문



김태한<삼위정밀 대표>


“조급하지 않고 기본 충실한 것이 경영노하우”


<주요프로필>
1955년 6월 11일 경기도 양평 출신
상공회의소 경영인협의회 회장
단원경찰서 외사자문위원회 위원장
안산세무서 공정세정자문위원, 세정협의위원
경기과학기술대 G-amp 제11대 총동문회장
경기카네기 시흥57기 회장


1990년 3월 1일 퇴직금 960만원으로 영등포구 당산동 8평 공장을 세내어 자동차부품제조업을 시작한 ‘삼위정밀’ 김태한 대표는 지난 30년간 IMF외환위기, 리먼사태 등 수많은 고난과 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잘 극복하여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 이루어왔다. 현재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엠티브이(MTV) 7로에 3천 평 규모의 아름다운 공장을 보유하고, 자동차용 터보엔진부품과 반도체관련부품을 가공 생산하는 정밀가공업체로 강소기업의 신화를 이룬 김태한 대표를 창립 30년이 되는 뜻깊은 지난 1일 만나보았다.

Q. 무역과 관련해 국무총리상과 대통령트로피, 경기도지사표창, 행정자치부장관상, 기획재정부장관상, 중소기업진흥공단장상, 안산시중소기업대상 등 사무실에 표창패가 무척 많은데, 무슨 상을 이렇게나 많이 받은 건지?

A. 지난 30년간 제품개발과 수출증진만 생각하며 게으름부리지 않고 열심히 한 길을 달려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회사도 성장하고 대외적으로 그 성실함과 기술전문성, 그리고 무역발전의 공로까지 인정받아 이렇게 큰 상들로 보답을 받은 거 같습니다. 몇 년 전 여유를 가지고 사회봉사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봉사관련 상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노력의 열매로 받은 상들이라 크고 작은 것을 떠나 모두 소중합니다.

Q. 삼위정밀이 무엇을 하는 어떤 회사인지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A. 삼위정밀은 1990년 설립된 이래 볼트, 너트, 철도차량부품을 시작으로 현재는 국내 차는 물론 GM, BMW, 폭스바겐, 아우디, 토요타 등 세계유명자동차의 엔진에 부착되는 Crank Ass’y, Rod Ass’y, Arm & Valve Ass’y 등 자동차용 터보엔진 부품과 반도체 관련 부품을 가공 생산하는 정밀가공업체입니다. 삼위정밀은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통해 보다 나은 가치를 창조하고, 품질이 바탕이라는 정신으로 기본에 충실함으로 고객의 신뢰와 지속적인 유대를 얻고 있습니다. 삼위정밀은 영업, 생산, 기술이 삼위일체가 되어 최고의 품질로 고객의 만족을 위하여 항상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Q. 회사를 설립하게 된 동기라도 있는지?

A.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제대로 된 직장을 얻어 13년간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히 일한 덕분에 적지 않은 월급을 받았지만 부양가족이 많다보니 늘 허덕였습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회사를 그만 두고 퇴직금 960만원을 가지고 1990년 3월 1일 영등포구 당산동 구석에 8평짜리 공장을 세 얻어 자동차부품제조업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전 직장의 동료들과 거래처 사장님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의욕도 넘쳐 잠을 쪼개가며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원인은 가격이 맞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자나깨나 생산성을 높이고 단가를 낮출 수 있는 방법만 생각하고 연구했습니다. 그러다 자동화개발로 하루 생산성을 4배까지 높일 수 있게 되었고, 남들이 버린 부품을 가져다 재생산해 단가를 낮추고 부가가치를 높이면서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덕분에 2년 만에 사거리에 있는 45평 공장으로, 또 4년여 만에 양평역 부근 100평 공장으로 확장이전 했습니다.

Q. 그 즈음이면 곧 IMF외환위기로 모두가 힘든 시기가 왔을 텐데, 어떻게 이겨냈는지?

A. IMF외환위기로 우리 역시 부도를 맞아 죽다 살아났습니다. 1억5천만 원의 장비구입비가 3억 원이 되어 돌아왔고 수금은 되지 않아 이리저리 자금을 다 풀어 막았는데도 8천만 원을 부도 맞았습니다. 끝인가 했는데 다행히 평소 조금씩 정기적금을 들었던 것이 은행신용으로 쌓여 부도위기에 1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습니다. 그 1년간 30~40% 줄어든 일감을 12명 직원이 교대로 일하며 월급을 반으로 줄이고 잔업수당도 반납해가며 겨우겨우 버텨 나갔습니다. 그래도 상황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마음이라도 비우려 강화도로 낚시를 다닌 것이 계기가 되어 급하던 성격이 느긋한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보다 이윤을 많이 남겨주는 기업이 진정한 고객이라는 생각의 전환으로 견적이 저렴한 중소기업의 물건을 받아 가공 생산하여 3~4개월 만에 경쟁력을 갖춰 정상 괘도로 올려놓았습니다.

Q. 계속 서울에서 회사를 운영했는데 안산에는 언제 왔고 오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지인의 소개로 다국적기업인 얼라이드시그널사를 만나 매출이 늘었습니다. 유럽의 부품은 비싼데 우리는 자체 개발하여 30% 저렴하게 납품하다보니 물량이 늘어 더 큰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2004년 4월 20일 안산시 성곡동 시화공단에 200평 공장을 얻어 확장이전 했습니다. 그 후로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를 하다 보니 주변에서 도와주고 자체 기술력도 보유해 가격경쟁력으로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2년 후에는 부근 300평 공장을 매입했고 그 이전까지는 임대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미국발 리먼사태가 터졌습니다. IMF 때도 감원 한 명 없이 무사히 넘겼는데 리먼사태로 일감이 반으로 줄면서 인원감축이 불가피했습니다. 할 수 없이 10년 넘게 일해도 기술력이 늘지 않는 친구들에게 권고사직을 권했고 그렇게 또 한 번의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 후 반월산업단지를 거쳐 초지동 820평 공장으로 확장이전 했다가 계속해서 매출이 늘어 2018년 성곡동 엠티브이 7로에 3000평 공장을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Q. 위기를 잘 극복하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계속해서 보이고 계신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지금 힘든 상태에 놓여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A. 앞서도 말했지만, 삼위정밀은 기본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영업, 생산, 기술이 삼위일체가 되어 최고의 품질로 고객의 만족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자체 기능 인력을 키우고 현재의 기술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매출의 약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합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여 특허를 내고 상용화를 위해 끊임없이 연구합니다. 삼위정밀의 제품은 다양한 연구 개발과 혁신을 통해 엔진의 고열에도 견디는 기술력으로 세계글로벌 시장을 선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2016년에는 제52회 무역의 날 ‘국무총리표창’, ‘500만불 수출의 탑’ 수상 등 무역발전의 공로를 인정 받았습니다. 힘들 때일수록 조급해하지 말고 더욱 기본에 충실해 성실하게 일하면 그 정성이 하늘에 닿아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Q. 특별하게도 오늘이 회사 창립 30년차다. 느낌이 어떤지?

A. 정신없이 사느라 30년이 된 지도 몰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창립기념일 행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내년에 30주년을 맞게 되면 생각해볼 일이지만 올해 역시 계획에 없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니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그래도 벌써 30년이라고 하니 그동안 힘들었던 일, 좋았던 일들이 스쳐가며 감회가 새롭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상기시켜주어 고맙습니다.

Q. 하루 24시간 자나깨나 삼위정밀만 생각하며 살아온 것으로 아는데, 봉사활동 또한 많이 하고 있다. 언제 시간이 나서 왜 무엇 때문에 그 많은 단체 봉사를 하는지 궁금하다.

A. 에버그린을 통해 정부지원 50%의 LED 교체지원을 받아 고마운 마음에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일만 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는데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친목을 도모하고 함께 봉사를 해보니 내 안에 기쁨이 커졌습니다. 책임감으로 열심히 한 것이 하나둘 연결되어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현재 상공회의소 경영인협의회 회장, 단원경찰서 외사자문위원회 위원장, 안산세무서 공정세정자문위원, 세정협의위원, 경기카네기 시흥57기 회장, 한국산업기술대학교 AMP 32기 수석부회장을 맡아하고 있고, 경기과학기술대학교 G-amp 제11대 총동문회장, 에버그린 7기 초대회장, 스마트허브 5기 4대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좋은 일을 거절하기가 힘들어 자꾸 맡게 되는 거 같습니다. 시간은 만들면 됩니다. 잠을 줄이고 시간을 쪼개어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 기부도 많이 합니다. 제가 쓴 시간과 돈 이상의 기쁨이 돌아오니 중독되어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최근 봉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A. 단원경찰서 외사자문위원회 위원장을 3년째 맡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안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대상으로 크게 1년에 네 번 봉사를 합니다. 1분기 설날떡국봉사, 2분기 바자회, 3분기 추석물품지원, 4분기 연말장학금지원을 합니다. 지난 연말에는 외국인 70여 명을 초대하여 3천만 원 상당의 기금을 만들어 장학금과 교복, 물품지원을 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고 보람됐습니다. 또, 상공회의소 경영인협의회 회장도 2년째 맡고 있는데, 친목도모의 성격을 봉사 쪽으로 바꾸었습니다. 골프대회 이익금을 기반으로 후원금을 걷어 역시 지난 연말에 교육부에서 추천받은 80여 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습니다. 다른 단체 역시 맡으면 책임감이 커서 잘 이끌어가기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원들이 잘 따르고 단합도 잘 되며 봉사도 활성화 되어, 이곳저곳에서 단체장을 맡기려 합니다. 이제는 꼭 해야 할 곳에서만 활동하고 나머지는 다음을 기약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A. 사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앞이 잘 안 보입니다. 수출을 하는 입장에서 급격한 임금인상으로 국제적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트남에 공장신설을 검토 중입니다. 자꾸 한국을 떠나는 기업들이 느는데 정치하는 분들이 이점을 잘 생각해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현실에 맞는 정책을 펴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하던 봉사는 집중하여 끝까지 잘 마무리하려 합니다. 이제 막 시작한 경기카네기 시흥57기에서 회장을 맡았습니다. 최근 카네기가 점점 빛을 잃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불꽃을 피우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100% 출석 시 금 한 돈의 상금 공약도 걸었습니다. 양평동 영광교회를 통해 매달 해외선교단체에 보내던 선교금지원과 매주 토요일 하던 국수봉사도 계속할 것입니다. 저에게 쓸 돈을 아껴 남에게 베풀면 상금이 하늘에 쌓입니다. 매월 조금씩 든 정기예금으로 신용을 쌓아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듯이 하늘에 상금을 많이 쌓으면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힘이 될 것입니다. <신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