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신문]와이드-김유숙<안산시여성자치대학 제9대 총동문회장>

2019. 3. 13. 11:32안산신문



김유숙<안산시여성자치대학 제9대 총동문회장>


“16년 역사와 전통의 여성자치대 활성화에 최선”


<주요프로필>
1968년 12월 전남 강진 출신
전)하늘소망어린이집 원장,
전)안산시어린이집연합회 이사
전)새누리당 경기도당 저출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전)자유한국당 경기도당 부대변인
현)안산시장애인복지회 후원이사
현)반월동주민자치위원회 감사
현)반월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부위원장
현)안산시여성자치대학 총동문회장


지난달 19일 신안산대학교 국제교육관 국제홀에서 안산시여성자치대학(이하 여자치) 총동문회장 이취임식이 있었다. 이날 취임하는 제9대 김유숙 총동문회장은 자신이 오늘의 주인공이라며 다소 긴 취임사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당차게 풀어나갔다. 그리고 다 못한 이야기는 임기 중에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선언했다. 전남 강진 출신임에도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 약소야당이 된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경기도의원에 출마해 약진을 보였지만 강대여당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50대 초반의 김유숙 회장, 한창 일할 나이인 그에게는 안정되고 넘치는 힘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오뚝이 근성이 보인다. 남녀노소를 떠나 사람을 끌어들이는 푸근한 매력이 있다. 그 에너지의 근원을 알아보려 지난 7일 여자치 사무실을 찾았다.


Q. 제9대 총동문회장 취임을 축하한다. 여자치와는 언제부터 인연이 있고 어떤 일을 해왔기에 안산시 여성들을 대변하고 리드하는 여자치 총동문회장의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됐나?

A. 안산시어린이집연합회 이사로 활동할 때 주변에서 여자치 가입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으로 미루다 14기 회원으로 들어간 것이 여자치와의 첫 만남입니다. 그 후 바쁘다는 핑계로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지내다가 제8대 현옥순 총동문회장 임기에 교육이사를 맡아 일을 돕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처음 회장 제의를 받았을 때는 부담감에 수석부회장을 먼저 하고 차기에 회장을 하겠다고 고사했습니다. 그런데 정기총회를 며칠 앞두고도 회장후보가 나오지 않자 어차피 할 회장 당겨서하라는 주변의 강권에 못 이겨 이렇게 제9대 총동문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Q. 사실 여자치가 활성화되다가 잠시 주춤하더니 침체분위기로 가고 있다는 말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침체이야기 저도 간혹 듣습니다. 그러나 여자치는 2003년도에 김영순 초대회장을 필두로 1기생을 배출하여 현재 28기에 이르는 전국 최초 여성자치대학으로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을 올 만큼 큰 성과를 거두어 왔습니다. 16년의 역사와 전통을 만들고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열정과 노고를 마다하지 않으신 선배님들, 교육지원에 아낌없이 힘써주신 안산시와 신안산대 관계자 분들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잠시 주춤했던 것은 여자치의 사춘기였다 생각하고 다시 성장하여 이제 청년으로 우뚝 서고 있으니 앞으로 더욱 활성화 되리라 봅니다.


Q. 여자치에 대해 모르는 시민들도 있다. 간략하게 소개를 한다면?

A.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보면 ‘안산시여성자치대학은 여성들의 잠재능력을 계발하여 사회참여를 확대하고 21세기 지방화시대에 부응하는 유능한 여성인력을 발굴하여 지방자치참여와 지역사회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여성 지도자 양성을 위해 개설된 교육과정’이라고 수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여성 지도자로서의 자질향상에 초점을 맞춘 참여&토론식 교육이 진행되고 있고, 교육 후 지방자치 및 사회참여로 연결하는 통로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1기부터 27기까지 총 950여 명 역대 수료자들의 이력을 보면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 멀었습니다. 곳곳에 숨어있는 여성 인재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각 분야에서 제대로 쓰임 받아 여성의 지위를 높이고 지역사회발전에 이바지하도록 돕겠습니다. 안산시 여성들의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도록 여자치 총동문회 친목도모에 더욱 힘쓸 계획입니다.


Q. 활성화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A. 역사와 전통을 저버리고 세운 업적은 아무리 훌륭해도 모래성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배들의 훌륭한 전통과 역사를 잘 이어 후배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제 4차산업혁명시대(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루어낸 혁명시대)가 도래했다고 합니다. 이에 우리 여자치도 전통을 지켜내려는 노력 못지않게 빠른 변화에 대응하여 도약하려는 노력 또한 필요합니다. 그리고 해외이주여성이 많은 안산의 특성상 이들이 차별 받지 않고 우리와 한 구성원으로 어우러져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여자치가 구심점이 되어 도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여자치 교육과 별도로 총동문회 차원에서의 사업은 총 네 번으로, 바자회, 체육대회, 안보견학, 의회방문이 있습니다. 올해는 여성사전시관 방문과 유명여성초청 강연회를 더 가질 예정입니다. 차츰 봉사단을 꾸려 주1회 돌아가며 봉사할 계획도 세워놓았고, 여성자치합창단을 만들어 연말에 공연도 올릴 예정입니다. 회원들의 친목도모와 정서함양을 위해 주말농장을 운영하여 무료급식소 등 봉사단체에 기부도 하고 기금도 마련하고 또 서로 나누기도 하려 합니다. 일벌이기 좋아하는 어린이집 원장출신이라 이런저런 계획이 많습니다. 모두 잘 진행되어 총동문회 참여인원이 배가 되길 바랍니다. 


Q. 여자치 교육과정의 장점이 있다면?

A. 다른 아카데미 교육을 받다 이곳에 오신 여성분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저녁이 아닌 낮에 여성들끼리 만나 공부를 하니 부담 없어 좋다고 말이지요. 저녁에 공부를 하면 남녀혼성 모임이든 여성만의 모임이든 끝나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어져 불편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나 봅니다. 여자치는 그럴 걱정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다른 아카데미는 교육비가 상당히 비싼 것으로 아는데 여자치는 10만 원만 내면 12주의 알찬 교육을 모두 들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교육비 25만원은 안산시에서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자부담 10만원에서도 5만원은 필요경비로 쓰이고 5만원은 총동문회 회비로 쓰이니 수강생은 전혀 부담이 없다고 보면 됩니다. 무엇보다 여자치의 교육을 받고 나면 달라집니다. 주로 4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 분들이 배우는 게 좋아서, 사람 만나는 게 좋아서,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꾸고 싶어서 옵니다. 그분들 대부분이 교육과정에 만족하며 그 이상을 얻어갑니다. 꿈이 생긴다고 합니다. 주변에 소개도 많이 합니다. 금번 28기도 45명으로 마감하여 곧 수업에 들어갑니다.


Q. 지난해 6.13지방선거에 자유한국당 나선거구(본도1,2동/반월동) 도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이력이 있는데, 혹시 다시 정치를 하기 위한 관문으로 여자치 총동문회장을 하는 것인지?

A. 여자치 설립이 여성들의 지방자치참여에 목적이 있고 실제 안산에 여자치 출신의 여성정치인들이 많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최종목적이 정치는 아닙니다. 안산시어린이집연합회 일을 하고 여러 기관에서 봉사를 하며 사회정치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다보니 탁상정치와 현실행정 사이에서 답답한 부분들이 생겼고, 개선을 위해 소신발언을 자주 한 것이 자연스럽게 정치와 연결돼 도의원 출마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어릴 때 꿈이 외교관이긴 했습니다. 중국과 외교가 없던 시절 초대여성 중국외교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비록 생활고로 외교관이 되는 길 쪽으로는 가보지도 못했지만 대신 보육교사의 길로 들어서 그쪽에서의 소박한 꿈은 이뤘습니다. 제가 만약 정치가 목적이었다면 이력이 될 만한 감투를 많이 썼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보시다시피 단체장을 맡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이번이 처음 같습니다. 소속된 단체에서 일만 열심히 했지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에 욕심이 있었다면 작은호남이라 불리는 안산에서 떨어질 게 불 보듯 뻔한 그 시기에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출마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앞으로 현실참여정치 차원에서 필요에 의해 또다시 정치의 길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는 개인적으로 하는 임대사업과 여자치 총동문회 활성화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입니다. 당을 떠나 옳다고 믿는 일에 소신껏 참여하는 일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잘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접었는데, 이유는?

A. 2001년 안산신도시에 어린이집을 개원하여 2016년 후배에게 넘길 때가지 안산에서만 16년을 어린이집 원장으로 일했습니다. 그 이전 부천과 서울에서 보육교사로 일한 것까지 더하면 어린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30년 정도 됩니다. 천직이라 생각하며 남다른 애정으로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접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보육시설의 아동학대와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육정책이 개편됐고 그럴수록 우리처럼 평범한 보육시설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이사랑카드가 생기면서 눈에 띄게 교사의 권위가 추락했고 출산저하로 원생까지 줄었습니다. 힘든 학창시절을 보내고 어렵게 보육교사가 되어 단독어린이집 하나 갖는 것이 꿈이었던 제가 남편의 도움으로 꿈을 이뤘을 뿐 아니라 늦게라도 사회복지학 학사, 유아교육학 석사까지 땄으니 배움에 대한 한까지 다 풀었습니다. 더는 여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4시간 매였던 어린이집을 후배에게 넘기고 심신의 여유로움으로 새로이 원룸텔임대사업을 시작했고 무료급식봉사 등 지역봉사활동도 활발히 하게 됐습니다.


Q. 남편의 아내사랑이 커서 주변에서 부러움을 많이 사고 있다고?

A. 저희 부부를 아는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소문이 나서 모르는 분들도 부러워합니다. 오죽하면 제가 취임식 때 남편소개를 안 했다고 조원칠 고용노동연구원 이사장님께서 축사를 하시며 제 남편과 아이들 칭찬을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서울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근무할 때 한 학부모가 자신의 남동생을 소개해주었는데 그가 지금의 남편입니다. 사람은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인생이 바뀐다고 합니다. 바로 배우자, 친구, 멘토인데, 저는 세 번의 만남 모두 성공했으니 복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특히 남편은 제게 배우자, 친구, 멘토 세 가지 역할을 넘치게 해주는 화수분입니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은 다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적극 도와줍니다. 단언컨대 남편의 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습니다. 고등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아 검정고시를 봐야했지만 주변에서는 저의 그런 사정을 모를 만큼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힘들게 선교유치원 보육교사로 일하며 미래가 불분명할 때도 긍정적 마인드로 늘 웃으며 지냈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복덩어리 남편을 만나 제 삶을 펴게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게 웃으려 노력합니다. 두 아들도 그런 남편을 보고 자라서인지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랑스러운 청년들로 잘 커 자신들의 몫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맘껏 제 할 일만 하면 됩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목표가 있다면?

A. 어떤 목표를 세워놓고 열심히 달려도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때가 있습니다. 하고 싶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또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래서 큰 그림을 몇 개 그려놓고 현재에 충실하면 자연히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리라 생각하며, 우선 여자치 총동문회가 활성화 되어 그 어느 때보다 융성해지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원룸텔임대사업이 무탈하게 잘 진행되어 어려운 이들과 이웃에 베풀며 사는 복된 삶을 그려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던 글쓰기를 배우고 화초를 기르고 뜨개질을 하며 가족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사는 모습도 그려봅니다. 정치는 다시 안 할 거냐고 자주 물어오는데, 자연스럽게 하게 되면 마다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그림 그려 넣지는 않겠습니다. <사진 박현석 기자, 글 신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