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신문]사설-기생충

2019. 8. 1. 09:14안산신문

기생충


영화 ‘기생충’이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도시의 빈민층과 상류층의 극단적인 대비를 묘사하며 세계 여러나라에서도 지극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전개하며 픽션을 가미하다보니 대작이 된 영화다. 
그러나 ‘기생충’이라는 말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기생충’ 단어를 대부분 긍정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기생충 삶의 방식은 독특하다. 대부분 자연 생태계나 세상의 삶의 방식은 ‘공생’의 관계이고 상호의존적이다. 벌과 나비는 꽃의 꿀을 따먹는 대신 꽃나무가 열매를 맺게 해주고 종족을 번식시켜 준다. 악어새와 악어의 관계도 상호의존적이고 상부상조적이다. 인간들의 관계 역시 자연의 일부인 만큼 대부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제적 생명체인 기생충만은 자연계의 상식에서 벗어난다.
기생충을 영어로 말하면 ‘PARASITE’다. PARASITE의 그리스 어원은 ‘남의 식탁에 차린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한다. 기생충의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듯하다. 몸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기생충 먹으라고 음식을 섭취하는 사람은 없다. 기생충은 자신의 노력 없이 먹을 것을 얻지만, 그 보상으로 인간에게 해주는 것은 그야말로 전무하다. 말 그대로 ‘남의 식탁에 차린 음식’을 먹고 산다.
기생충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과 같은 종의 양분을 훔쳐 먹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자신과 다른 종의 것을 훔친다는 것이다. 기생충은 기생충에 기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인 동물들에 기생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지하실 남자’는 영양 상태 좋은 사람의 창자 속에 자리 잡은 기생충처럼 부잣집 지하 벙커 같은 지하실에 자리 잡는다. 자신과 같은 종인 ‘가난한 사람’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종인 부잣집의 양분을 꺼내 먹으며 산다.
사장님·사모님이 지하실 남자 먹으라고 열심히 장을 봐 냉장고를 채워놓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는 그것을 나눠 먹으며 살아간다. 워낙 부잣집 살림이라 우유 한 통, 소시지 한 통 정도 사라지는 것쯤은 표시도 안 난다. 당연히 기생충을 의심하지도 않고 구충제를 사러 약국으로 달려가지도 않는다.
기생충이 서식하는 곳이 우리 몸이나 영화 속 사장님 집뿐 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 먹으라고 식탁에 열심히 차린 음식’을 먹고 살면서 아무런 보답도 안 하는 기생충들이 많다.
최근 안산시에 창간 30년을 자랑하는 안산신문과 다른 ‘안산신문’이 마치 정통 안산신문 인양 활보하고 있다.
안산신문의 홈페이지는 ansansm.co.kr이다. 이는 홈페이지를 개설한 이후부터 변하지 않은 주소이다. 또 다른 안산신문은 ansanj.com이다. 한때 지역 언론이었던 ‘안산저널’의 홈페이지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안산신문이란다.
이제는 이들의 기만행위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 민·형사상 소송을 본지는 제기한다. 시민들과 독자들은 진실을 가리고 마치 ‘안산신문’을 주장하는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창간 30년이 된 ‘안산의 최고신문 안산신문’에게 격려와 힘을 실어주기 바란다.